Detroit Pistons
1986-87
전체 27위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Detroit Pistons)에 입단한 로드맨의 데뷔 첫 해 성적은 평균 15분 출장에 4.3리바운드를 잡는 데 그쳤다. 하지만 공격 리바운드와 수비 리바운드의 비율이 1:1 이라는 점은 리바운드에 대한 로드맨의 재능을 보여주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피스톤즈는 이스턴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보스턴에 3승4패로 NBA 파이널 진출에 실패한다.
June 17, 1986 1라운드(11순위)로 디트로이트에 지명된 존 샐리(John Salley)와 함께, 로드맨은 2라운드(27순위) 지명
나중에 시카고에서 함께 우승을 차지한 론 하퍼(Ron Haper)가 8순위(클리블랜드로), 스테픈 커리의 아빠 델 커리(Dell Curry)가 15순위(유타 재즈), 마크 프라이스(Mark Price)가 25순위(댈러스 지명 후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May 21, 1987 Eastern Conference Finals Game2, 2개의 자유투 모두 에어볼... ㅜㅜ
May 26, 1987 Eastern Conference Finals Game5, 래리 버드를 수비하는 로드맨
May 26, 1987 Eastern Conference Finals 운명의 Game5, 경기종료 5초 전 피스톤즈가 107-106으로 1점 앞선 상황에서
래리 버드의 슛을 로드맨이 블로킹 한 후 피스톤즈의 볼이 선언되자 좋아하는 로드맨
하지만 곧바로 래리 버드의 스틸 후 보스턴의 득점으로 인한 역전 패. 이 경기로 인해 시리즈 전적은 2승3패로 피스톤즈가 밀리게 되고, 결국 3승4패로 우승 트로피를 보스턴에게 넘겨준다. 경기가 끝난 후 아쉬워 하는 로드맨
May 30, 1987 Eastern Conference Finals Game7, 래리 버드를 앞에 놓고 덩크슛을 성공시키는 로드맨
1987-88
로드맨은 82게임 전 경기를 소화해 내며 경기당 평균 26.2분 출장, 11.6득점, 8.7리바운드라는 성장을 보인다. 이런 그의 성장에는 필 잭슨과 함께 훗날 자신의 농구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 척 데일리 감독이 있었다. 시즌 중반 이후 척 데일리는 에드리안 덴폴리 대신 벤치 멤버였던 로드맨을 기용하여 그의 성장을 가속화 시켰는데, 88년 1월 4일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져스와의 원정경기에서는 18리바운드, 30득점을 올리기도 한다. 이스턴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에서 4년차의 조던, 루키 피펜이 있던 불스를 4승1패로 꺾고, 이스턴 파이널에서는 래리 버드의 보스턴마저 4승2패로 꺾지만, 결국 NBA 파이널에서 매직 존슨과 압둘 자바의 LA 레이커스에 3승4패로 석패하고 만다.
June, 1988 NBA Finals 에서 매직 존슨을 수비하는 로드맨. 하지만 레이커스에 3승4패로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고 만다.
June 21, 1988 NBA Finals Game7, 4쿼터에서 매직 존슨에게 오펜스 파울을 유도하는 로드맨
June 21, 1988 NBA Finals Game7, 4쿼터에서 압둘 자바의 공을 스틸 한 후 그림같은(?) 레이업슛을 성공시키는 로드맨
이 때까지 피스톤즈의 분위기였으나 결국 토마스가 3점슛 시도를 못해보고 결국 3점차로 레이커스에게 패배
1988-89
이때부터 로드맨은 소속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Badboys' 란 팀컬러에 완벽하게 적응하기 시작한다. 플레이 스타일은 그 전보다 훨씬 과격해졌으며 허슬 플레이도 자주 선보였다. 경기당 리바운드는 어느덧 9.4개에 이르렀고, 야투 성공률도 리그 최고인 59.5%를 기록했다. 89년 2월 18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원정경기에서는 21리바운드, 32득점을 기록하며 숨은 공격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해 탄탄한 조직력과 수비력이 절정에 달한 디트로이트는 이스턴 파이널에서 불스를 4승2패로 꺾고 NBA 파이널에서 1년 전 패배를 안겨준 LA 레이커스를 상대로 스윕하며 챔피언에 등극한다.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10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낸 로드맨은 처음으로 올 NBA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고, 다음해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전직 공항 청소부ㅎㅎ
1989 Eastern Conference Finals 에서 플라잉 킥을 날리는 로드맨(역시 Badboys...)
June 2, 1989 Eastern Conference Finals Game6, 조던을 수비하는 로드맨
June 11, 1989 NBA Finals Game3, 승리한 후의 로드맨
June 13, 1989 NBA Finals Game4, LA 레이커스를 누르고 생애 첫 우승 후 기뻐하는 로드맨
1989-90
압둘 자바가 은퇴한 89-90시즌 디트로이트는 2년 연속 우승에 도전했다. 시즌 중반부터 주전 자리를 못 박은 로드맨은 팀의 막판 39승 4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그의 커리어 중 가장 빛나는 ‘올해의 최우수 수비 선수 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생애 첫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다. 조 듀마스, 아이재아 토마스, 빌 레임비어 등과 함께 디트로이트를 2년 연속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으며 팀 역사상 최고의 중흥기를 이끈다. 당시 최고의 득점 기계였던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를 상대로 4승3패의 성적을 거두고 NBA 파이널에 진출했으며, 파이널에서 포틀랜드를 4승1패로 꺾고 2년 연속 우승을 이룬다. 특히 이스턴 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5월 28일)에서는 20리바운드와 20득점을 올리기도 한다.
올해의 최우수 수비 선수 상을 받은 후 눈물을 흘리는 로드맨... 울지마...ㅠㅠ
리복 광고에서 나이키를 던져버리는 패기ㅋㅋ (나중에는 나이키와 계약)
1990 All-Star Game 에서 미래의 불스 3인방이 한 팀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May 1990 Eastern Conference Finals, 조던을 밀착 마크하는 로드맨과 레임비어
June 14, 1990, 포틀랜드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디트로이트
1990-91
90년대 들어 로드맨은 매일 저녁 숙소에서 경기가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공이 튕겨져 나가는 위치의 분포와 인사이더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체크하며 파워포워드로서 203cm의 다소 불리한 신체적 조건을 극복하는데 열을 올렸다. 90-91시즌에는 공격 리바운드(평균 4.4개, 총 361개)부문에서 리그 1위를 기록했고, 전체 리바운드 12.5개로 데이비드 로빈슨에 이어 2위에 오른다. 그는 상대편 선수에게 가장 골치 아픈 선수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인사이드에서의 탁월한 수비력 덕분에 2년 연속 ‘올해의 최우수 수비 선수 상’을 수상한다. 1월 2일 덴버 너게츠와의 홈경기에서는 23리바운드, 34점을, 2월 13일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홈경기에서는 24리바운드를 잡아내지만, 이스턴 파이널에서는 조던의 불스에 스윕을 당하며 3년 연속 우승의 꿈이 좌절된다. 불스는 드디어 피스톤즈를 꺾고 NBA 파이널에서 LA 레이커스를 4승1패로 꺾으며 첫 우승을 이룬다.
January 1, 1990, 2년 연속 최우수 수비 선수(DPOY)로 선정된 로드맨
'한 번 높이 뛰어오르기보다 여러 번 자주 뛰어 오른다.’
마이클 조던에게 무참하게 블로킹 당하는 로드맨. 아...
May 21, 1991 Eastern Conference Finals Game2, 불스의 윌 퍼듀와 신경전이 있었으나 곧 화해하는 로드맨
1991-92
매직 존슨이 은퇴한 92년, 로드맨은 82경기 전 경기를 뛰며 평균 18.7개의 엄청난 리바운드 스탯을 기록하며 윌트 채임벌인의 71-72시즌(19.2개)이후 가장 좋은 리바운드 스탯을 찍는다. 3월 4일 인디애나와의 홈경기에서 커리어 하이인 34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등 정규시즌 절반에 가까운 39경기에서 20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아낸다. 89-90시즌에 이어 두 번째로 올스타에 선정된 그는 25분 동안 코트를 누비며 13리바운드를 기록하기도 한다.(올스타 통산 36분 출전, 17리바운드)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뉴욕 닉스에게 2승3패로 덜미를 잡힌다. 반면 시카고 불스는 파이널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브레이져스를 4승2패로 누르고 2년 연속 우승을 거머쥔다.
로드맨과 함께 올스타에 뽑힌 팀동료 아이재이아 토마스, 조 듀마스
February 9, 1992 All-Star 경기의 로드맨
뉴욕 닉스 전에서 패트릭 유잉의 앨리웁을 공중에서 가로채는 로드맨
March 4, 1992, 34개의 리바운드로 신기록을 작성하는 로드맨
April 24, 1992 Eastern Conference 1Rnd Game1, 3쿼터에 경기장으로 들어온 개를 들어 옮기는 로드맨
디트로이트는 뉴욕의 패트릭 유잉을 막지 못하고 결국 2승3패로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탈락하게 된다.
1992-93
농구에 있어서 매우 성실했던 로드맨은 약 6년 가까이를 연속 출장하며 47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개인기록도 세우지만 92-93시즌을 앞두고 척 데일리 감독이 팀을 떠났으며 모델 출신의 아내와도 결혼 8개월 만에 이혼을 하는 등 농구 인생에 시련을 겪으며 이때부터 방황하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92-93 프리시즌을 통째로 불참한 로드맨은 1992년 11월 6일 유니폼 규정에 어긋나는 검은색 리복 운동화를 착용하고 문신을 한 모습으로 개막전에 나선다. 디트로이트의 감독이 바뀌면서 40승42패의 성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지만 로드맨은 2년 연속 경기 당 18개 이상의 리바운드(18.3개)를 잡아내며 ‘리바운드 천재’라는 칭호를 얻는다. 현대 농구사에서는 누구도 근접하기 힘들었던 평균18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2년 연속 잡아낸 로드맨, 그의 주가는 최고조에 달한다. NBA 파이널에서는 시카고 불스가 찰스 바클리의 피닉스 선즈를 4승2패로 누르고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한다.
92-93시즌 개막전에 짧은 머리와 문신을 한 모습으로 코트에 나서는 로드맨
디트로이트의 유니폼을 입고 몸에 문신이 있었던 시즌은 92-93시즌이 유일하다.
April 25, 1993 vs NJN, 디트로이트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로드맨
(마지막 경기의 상대가 하필 척 데일리 감독의 뉴저지라니...)
Dennis Rodman 1/6 (Prologue) 읽기
Dennis Rodman 3/6 (San Antonio Spurs) 에서 계속
이미지 출처: google, gettyimage, youtube, 개인소장자료
참고 싸이트: http://www.basketball-reference.com, http://fun.jjang0u.com/articles/view?db=311&page=10&no=170, http://blog.naver.com/qsohn/40057115569